대전 충남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
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 역임
서울미술협회 운영위원 역임
오리진 회화 협회 회장 역임
Daejeon, Chungnam (b.1955)
Education
Genre/Style
Social & Educational Career
수 상
2012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정예작가상 수상
1998 한국미술작가상
1996 청년작가 초대전 우수상
1993 방글라데시 비엔날레 최고상 수상
1990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
작품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예술진흥원
정부종합 3청사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외무부, 헝가리 대사관
외무부, 스위스대사관
한국일보사
외교통상부
동아대학교병원 등
Awards
Collections
개인전
2024 이열 전-Mirror, 거울-지다 (아트센터자인, 서울)
2023 이열 전 (노화랑, 서울)
2022 이열 전 (H gallery: 초대전, 서울)
2019 이열 전-Art + Practice: 작업으로 실천한 주거공간 (서울)
2018 이열 전 (노화랑, 서울)
2017 이열 전 (김세중 미술관, 서울)
2015 이열 전–Another Time (파리국제예술공동체, 프랑스)
2012 이열 전-대지의 숭고미를 담다 (금호미술관, 서울)
2010 이열 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09 이열 전-생성과 소멸의 연기 (Gallery Ho, 서울)
2007 이열 전-생성공간-변수 (가나인사아트센터, 서울)
2006 그레이트모 스튜디오 오픈 스튜디오 (Greatmore studio,Cape Town)
2001 이열 전 (일본 후쿠오카 MA갤러리, 후쿠오카) 등 40회
단체전 및 기획초대전
天態万想(천태만상)전 (황성예술관, 북경)
한국 현대미술 초대전 (아테네 시립 화랑, 아테네)
일․한 현대미술전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현대회화의 방향전 (수원미술관, 수원)
한국미술, 조형의 모델전 (AKA SEOUL, 서울)
공존-한국미술 오늘의 조망전 (경향갤러리, 서울)
서울현대미술 로마전 (로마건축가협회하우스, 로마)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개관기념-한국현대작가 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 서울)
한국현대작가 초대전 (독일국립미술관, 독일)
에꼴드서울전 (관훈미술관, 서울) 등 300여회
너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2023. 임대식(미술비평, 쌀롱 아터테인 대표)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비추고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물에 비춰진 나의 모습에 너무나 심취하여 그 물속으로 빠져버린 나르시스처럼, 격정적이지는 않겠지만 내가 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정신적 사고를 넘어 즉각적으로 나는 누구일까라는 가장 현실적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누군가에 보여지고 있구나… 라는 것은 나에 대한 깨달음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정체성의 혼란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나의 얼굴은 나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다. 물이나 거울 같은 반사체들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결국,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감정적 이입이 가능해 짐으로써 빠르게 사회화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과학적 소통 방법인 언어와 문자 그리고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손이 크게 한 몫을 하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인류는 나를 비추는 무엇인가를 통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되었고, 그 답은 여전히 연구 중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더 이상 거울에 비춰진 나, 개인의 질문이 아니게 되었다.
어린 시절, 거울을 바닥에 놓고 그 속을 들여다 본 경험은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천정이 보이고 그 천정이 보이는 거울의 공간에 비쳐지는 세계에서만큼은 내가 절대적이었다. 날 수도 그리고 빠르게 그 공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자신감이 생겼었다. 당시에는, 세상을 뒤집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상상이었겠지만, 거울에는 언제나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놓여져 있었던 것 같다.
이열 작가의 거울은, 그 거울을 보고 있는 나를 비추고 있다기 보다는 어쩌면 거울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었을 역사를 반사적으로 나에게 비춰주고 있는 것 같다. 거울 속의 또 다른 거울.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유명인이기도 하고, 르네상스 시기 어느 궁에서 홀로 쓸쓸히 사라져 갔을 누군가의 초상이 바로 작가의 거울 속의 거울이다. 죽음을 두고, 지금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의미로 ‘바니타스’는 삶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오히려 이 삶을 얼마나 헛되게 하는지를 묻는다. 그 상징으로 거울이 등장한다. 이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나에 대한 가장 일차적인 성찰의 매체이기도 하다.
이열 작가의 거울에 담겨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시간을 넘나들고 싶을 정도의 깊은 그리움이다. 그가 처음으로 거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수 많은 시간 동안 어머니의 얼굴을 담고 있었을 낡은 어머니의 경대에서부터 그의 거울 작업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거울은 많은 사람들의 지난한 삶의 역사를 우리가 직접 볼 수 는 없겠지만,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작가는 오래된 거울 프레임을 복원하고 재생하면서 당시에 그 거울을 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의 감성으로 새롭게 이어왔다. 역사적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액자들을 복원해 내는 작업은 상당히 예민하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작업을 통해, 작가는 당시의 문화를, 그리고 트랜드를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들과 당시 예술활동의 범위 내지는 방법들을.
거울이 단순하게 나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시대의 어느 한 장면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며 비춰본 나의 거울에 나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그리고 역사는 나의 거울을 어떻게 해석하게 될 것인지, 너무나 당연하게 숨쉬는 것처럼 나를 비추던 모든 것들에 이제 조금은 더 진지하게 그 앞에 서야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추상화가 이열의 근작:
회화적 흔적, 시간의 흔적
2019. 정연심(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 전시기획/비평)
이열은 1989년 바탕골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며 <생성공간-변수>를 중심으로 주로 추상회화를 제작해왔다. 여백의 공간에서는 동양의 필묵에서 느껴지는 선의 역동성과 유영하는 색채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생성공간-변수>는 우연적이면서도 동시에 절제되어 있어 선과 여백, 색채는 하나가 된다. 그의 작업은 단색화처럼 물성이 드러나지만 일정한 그리드 조직과 같은 균일성이 배제되어 있다. 이열의 그림에는 앵포르멜과 액션페인팅과 같은 작가의 행위와 제스처와 같은 수행성(performativity)이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의 회화적 추상작업에 등장하는 '흔적'에는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축적된다.
이열은 그동안의 작업과 달리, 2018년 개인전에서는 오브제 작업으로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회화라는 장르를 조금 더 확장시켜 거울이라는 새로운 속성에서 추상회화에서 시도했던 회화적 흔적과 시간의 흔적(vestige)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일차적으로 그가 이러한 거울을 사용하게 된 동기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는 파리에서 레지던시로 그가 일 년 동안 체류하면서 회화의 확장을 꾀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파리의 벼룩시장, 앤틱 마켓 등에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거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거울은 자기반영적 효과, 즉 사람을 비추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한 거울의 프레임은 마치 회화의 프레임처럼 동시대성이 잘 반영되어 시대적 트렌드와 함께 가기도 한다.
이열의 거울은 야요이 쿠사마와 같은 일부 작가들이 사용하는 거울처럼 자기부정과 강박적 심리효과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열의 거울 작업들은 거울 아래에 작가가 그린 드로잉 효과, 그림의 선, 색채 등이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이미지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거울 작품에서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들이 다르게 보인다. 거울 표면을 깍아낸 표면의 흔적들은 마치 암각화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오랫동안 쌓아온 시간성의 흔적, 지표성(index)을 지시하는 것 같다. 거울에서 온전하게 보이는 관람자들의 모습은 이열의 회화적 거울 앞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신기루처럼 흐린 이미지의 잔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잔상은 작품을 본 이후에 자연스럽게 심리적 잔상, 기억 속에서의 잔상을 만들어 그동안 회화 작업에서는 엿보기 어려웠던 관람자와의 교감이 조금 더 긴밀하게 이뤄지게 한다.
2018년 노화랑에서의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거울 작품'들은 몬드리안의 그리드 추상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들도 있으나, 거울 아래에서 빨강과 노랑 등은 점차 예기치 않은 다른 색채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거울 작품은 제작 과정 자체에서 우연적 효과를 낳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생성공간-변수>에서 보았던, 절제되어 있지만 거대한 자연과 우주 속에서 그 자체로 '생성'하고 자연스러운 질서와 무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다만, 이번 거울 작업은 회화작업에서와 달리, 여러 겹의 회화적 붓 터치와 이미지의 거울효과, 혹은 반추효과 등의 실험을 통해 이열 작가는 회화적 특징을 거울의 표면, 겹겹이 쌓인 시간성의 흔적, 회화적 흔적으로 변형시킨다. 이열의 추상화는 회화적 실험성을 레디메이드였던 거울 속에서 과거 수세기 전에 제작된 시간성을 현재의 관점으로 소환해 점, 선, 면, 스프레이 효과 등으로 우리의 시각성을 혼란시키며,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각의 장으로 우리의 경험을 폭넓게 한다.
적어도 나의 눈에는, 이열의 거울 작업은 그동안 그가 집요하게 실험하던 <생성공간-변수>를 대체하는 작업이기 보다는 '생성공간'이 조금 더 자유롭게 입체적 공간과 시간 속으로 확장해나가는 지점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이러한 두 작업들은 자연스러운 매개적 공간, 중성적 공간 속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 쪽은 회화로서 물감으로 물성의 공간을 형성했다면, 후자는 거울이라는 오브제의 성격으로 우리의 시지각을 조금 더 물리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개입시킨다.
이열의 거울 작업은 관람자의 시선을 계속에서 몰입하게 하면서도 또한 회화적 붓 터치와 이미지의 잔상효과 (거울 아래에 축적된)를 통해 관람자의 시선을 막아버리는 이중적이고 양가성을 띠기도 한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는 관람자의 시선과 이를 묘하게 충돌시키는 회화적 이미지는 이번 거울 작업에서 관람자의 시선(gaze)을 통해 작품의 표면 속에서 충돌하는 시각성을 구축하고 있다. 그것은 재현의 충돌이자, 회화와 거울의 속성의 충돌, 거울 밖의 시간과 거울 안의 시간의 중첩 등 여러 겹의 비가시적인 속성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으로 이 모든 것들이 거울작업의 표면 위에서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거울의 어원을 따져보면, '보다'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mirare에서 나온 고대 불어 mirour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나르시스가 샘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나르시시즘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또한 순우리말로는 ‘거구루 → 거우루 → 거울’이라는 변화과정을 거쳤다. '거구루'의 의미는 '거꾸로'였다고 하는데, 우물이나 샘 속에 비쳤던 거울 속 이미지가 거꾸로 보여서 그런 의미가 만들어진 것 같다. 이열의 거울 작업은 이러한 거울의 의미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반영적 특징을 지닌 거울효과, 거울 이미지에 일종의 변화와 변형을 거치는 회화적 과정을 반영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세계를 현재의 관점에서 '거꾸로' 바라보는 비평적 거리두기를 꾀한다.
이열의 거울 작업은 그의 추상작업의 연장이면서 회화적 제스처를 그림의 프레임 밖에서 실험해보는 집요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울이라는 매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이열의 거울 작업은 시간성을 자연스럽게 회화적 표면으로 옮겨놓았다. 이를 통해 관람자들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거울 표면 안에서 유희적으로 걸어보거나 조금 더 직접적으로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거나, 아니면,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퍼즐을 맞추듯이 이미지를 바라보게 된다. 왜냐하면 회화적 잔상과 거울 표면의 스크래치 효과로 인해서 그의 거울은 이미지를 '불완전하게'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이열의 거울 작업은 이단화, 삼단화와 같은 서구의 제단화, 혹은 한국의 병풍처럼 여러 개의 패널로 구축되어 있는데,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전시 공간 전체를 삶의 미장센으로 치환시키는 면모를 보인다. 그것은 단순한 회화적 프레임의 확장을 넘어 공간 전체를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려는 시각성을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거울의 표면 위에서 회화적, 심리적 긴장관계를 구축해 가는데, 그것은 <생성공간-변주>보다 더 관람자와 긴밀하게 교감한다. 이러한 거울 작업 속에서 관람자는 훨씬 더 관계적이며, 개입적인 상황을 연출한다.